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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안 두 할머니
평산댁
색 바랜 시골버스가 비포장 산길로 땅 고개를 넘어 예천 오치를 들어갔다
가 할머니 한분을 태우고 다시 땅 고개를 넘어 안동 오치 마을로 들어가 고
추 푸대 자루를 가득히 머리에 이고 마을 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50대
중반 아주머니를 한분을 더 태우고 다시 아들 딸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 읍
내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 편 중대바위가 있는 서미 산골 마을로 버스는 미
끄덩거리며 올라갔다.
버스가 옛날 정미소 앞에 다다르자 서미 골은 연 청색 연기로 덮어져 있었
다.
비록 날이 춥다고 하나 굴뚝에서 살금살금 피어나는 참나무 연기는 마치 색
갈 고운 하늘 솜이불을 내려서 덮어 놓은 듯 아늑하다.
기름 값이 올라간 지난해부터 다시 이 산골 사람들은 옛날처럼 장작 나무
로 군불을 지펴서 추운 엄동설한을 넘기는 집들이 많아 졌다.
서미 골 정미소 앞은 산골 버스의 종착역이다.
겨우 버스 한대 되돌릴 정미소 앞마당은 아직 눈이 여기저기 덜 녹은 채로
있었다.
마을 정미소는 주인이 버리고 도회지로 떠 난지가 십년이 훨씬 넘었고 그
옆집도 빈집이고 그 옆집도 이미 삼년 째 빈 집이다.
정미소 바로 옆집은 소를 몇 십 마리 키우면서 부농의 꿈을 꾸던 젊은이가
어느 날 농협 빛에 야반도주를 하고, 빈 집 마당에는 잎 떨어져 숭숭한 망
초 대궁만 다 낡은 경운기를 덮고 있는데 녹 쓴 경운기는 법원 차압 딱지
를 몇 년 째 달고 있었다.
날이 매칠 째 꽁꽁 얼어서인지 버스 엔진 소리가 더 터덜거렸지만 버스 기
사 양반은 공회전을 시켜 놓은 채로 라훈아 “고향 역” 노래를 틀어놓고
는 출발 할 생각이 없는지 느긋하다.
하루 4번 이 듬 마을에 버스를 몰고 들어오는 최 기사는 종착지인 서미 골
에서 되돌리는 첫 차 시각은 7시다.
손님이 없으면 차를 금새 돌려서 산 아래 창 마을로 내려 가야하지만 ...느
긋한 이유는 저 윗 골 쪽에서 당당 걸음으로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며 달려
오는 할머니 모습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떨어진 할머니 뒤 쪽에서는 지게에 쌀 포대를 지고 내려오는 할아버
지 그리고 손자 인 듯 한 꼬맹이가 자기 덩치보다 더 큰 고추 푸대 자루를
메고는 버스 노칠세라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할매도 뛰고
지게 짐에 허리 굽어진 할배도 성큼 걸음으로 뛰시고
손자도 어깨에 자루를 메고 뒤뚱 거리며 버스를 보고 달려 옵니다.

버스 기사는 눈 때문에 버스는 벌써 2틀이나 이 산골에 들어오지 못한 미안
함도 있고 내일 모레가 설이라서 객지 자식들이 입에 들어갈 떡쌀 메고 헉
헉 내려오는 노인을 보고 시간 되었다고 그냥 모른 척 출발 할 수 없기 때
문이다.

허긴 이런 산골까지 차를 몰고 와서 정시 출발 고집하다간 시골 손님 태우
기 힘든 곳 이기도하다.
이윽고 숨을 가뿌게 몰아 쉬시면서 휜 목도리를 덮어 쓴 할매가 먼저 버스
로 올라서면서

“아이고 기다려 줘서 고마이더?” 숨 가쁘게 인사를 버스 기사에게 건넨
다.

40대 쯤 보이는 뚱땅한 버스 기사가 얼른 버스에서 내려와 헉헉거리며 떡쌀
을 지고 산길을 내려오는 노인 쪽으로 달려가 우선 지게 위에 쌀 한 포대
를 번쩍 들어서 버스에 올리면서

“하이고 어런요..떡살을 뭐 이렇게 많이 지고 오시닛껴?”
“아이고 숨차...헉헉..아이들이 마구 9남매씨더..내일 모레 구정이랏꼬 마
구 몰려 올낀데 떡국이라도 많이 해 놓고 참 기름도 짜야지!
“아 예 예...맞지요 맞니더...고향 오는 자식들 떡이라도 많이 챙겨 줘야
지요”

할아버지는 지게에 지고 온 쌀 포대를 버스에 올리자 뒤에 엉거주춤 하던
양 볼이 발간 꼬맹이도 말없이 자기가 들고 온 고추 푸대를 버스에 들어서
올렸다.

“창식아 점심 먹고 할배하고 꼭 읍내로 나오거래이! 니 신발 하나 꼭 사야
한다!”

할매가 꼬맹이를 보고 소리치자 꼬맹이는 땅을 보고는 꽁꽁 얼어붙은 눈을
몇 번이고 발로 차더니 할머니 말에 대꾸도 아니 하고 할아버지를 따라서
웃 골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 안에 올라간 할머니가 말없는 손자가 안스러운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송아지 먹이 주고 10시 차로 꼭 내려 오이소! 외손자 꼭 띨꾸 오이소! 점
심은 자장면이라도 사 먹이게\\"

하고 할머니가 고함을 지르자 할아버지는 알았다는 듯이 그저 손만 한번 번
쩍 들더니 말도 아니하고 꾸부정한 허리로 돌아서서 외손자를 데리고 웃 골
로 올라가신다.
내이 모레가 구정인데....옛 날 같으면 떡국이다, 송편이다, 백설기이다
설 때 먹을 떡 준비로 버스 가득히 사람들이 타고 읍내로 갔지만 마을 전
체 절반 이상이 빈집이니 세밑이것만
서미 골은 이제 버스 손님도 별로 없다.
버스는 아들 딸 바위 길로 즉 산 아래 창 마을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방금 올라온 서미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자

“아이고 이게 누구껴?”

예천 오치에서 버스에 오른 할머니가 서미 골에서 방금 올라온 할머니를
보고 반기신다.

“하이고 이게 누구잇껴?...먼 사돈 아잇껴?

두 사람은 무척 반가운 사이처럼 보였다.
먼 사돈...
오치 할매 11촌 질부가 서미 할매 집에서 시집 왔으니 두 사람은 사돈 사이
지만 먼 사돈으로 치는가 보다.

“오랜 마이씨더 그간 별고 없었닛껴?
“별고 없니더”
“사돈은 어데 가닛껴?”
\\"장터 떡 도하고 참지름(참 기름)도 짜고 할랏꼬 가는 질(길)이씨더“
“사돈은 뭐 하러 가닛껴?”
“청양 고치 빻러 가니더..세째 아들이 매운 고추를 글키 좋아하니더, 영
감 약도 쫌 타와야 하고”
“영감님 아직 자리에 누 있닛껴?
“아이구 저렇게 죽지도 안하고 누워서 똥 싼지가 벌써 삼년이 넘니더”
“하이고 이 추분 겨울에 안 사돈이 고생있시더”
“........고생 보담도 내가 쓸어질까 겁나니더....영감, 할마이 다 드러누
우면 객지 아들들이 여간 곤란 할씻껴?
“그케 ....세상 살기 좋아 졌다지만 늙으마 병들어 죽지도 안하고 드러누
울까 걱정있시더”
“맞니더...도시 며느리들 한데 병 수발 받는다는 것도 어렵고......”
“사돈은 지름(기름) 보일라 때-닛껴?”
“아잇씨더...객지 아들이 지름 값은 주지만...올해는 지름 값이 많이 올라
서 돈도 아깝고 고마 산에 나무는 천지니깐 나무해서 군불 때니더”
“군불이 좋치뭐... 아래묵도(방 아래 쪽) 뜨끈뜨끈 하고”
“그래도 더운물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는 지름 보일라가 좋니더”
\\"지도 이제 늙었는가 날이 추우면 작년부터 무릎이 이꾸(이처럼) 아프이더
어”

오치 할머니가 무릎을 만지시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버스는 그사이 오치 못 뚝 옆을 돌아가고 산 섶에 줄기줄기를 하늘로 뻗치
고 서있는 참나무 가지에 아침 비들기 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두 할머니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아이고 깨가 두말은 될씨더만 그래 참지름(참기름)많이 짜닛껴?”
오치 할머니가 서미 할머니 의자 맡으로 늘어진 제법 큰 깨 보따리를 보고
말을 건넨다.
“이 할매 자식들이 9남매 아잇껴..한 집에 한 병이라캐도 9병인데 많이 짜
야 되니더”
이번엔 안동 오치에서 탄 50대 아지매가 대신 나서서 설명 해준다.
서로 산 하나를 지나야 하는 동네지만 늘 읍내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하고 봄
가을로 한번씩 같이 놀러 다니므로 다 아는 사이다.
차가 창 마을을 지나가도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저 아래 원뜰 마을
느티나무 앞에 만 서너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차는 아직 덜 녹은 채로 꽁꽁 얼어붙은 눈길을 엉금엉금 느리게 달렸다.
산골 두 할머니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아이고 먼 사돈 8남매 아이고 9남매씻껴?”
“9남매래”
“마카(전부) 객지에 나가 사닛껴”
“마카 객지에 나가서 저거끼리 사니더 근데 거기는 몇 남매씻껴?
“8남매..”
“하나도 안베리고( 안 죽고) 다 키웠닛껴?
“다키웠니더”
“손자도 많을씨더”
“우린 손자가 그리 안 많니더..요즈음 도시 며느리들이 아 놓닛껴..한 둘
이 놓고 고만이지”
“우리는 친손자 외손자 합해서 마구 열여섯 명이 있시더”
“아이고 할매는 복도 많니더”
오치 아지매가 심심한지 두 할머니 이야기를 거든다.

“우리는 친손자 외손자 마구 열 명 있시더만 속 상하이더”

오치 할머니가 갑자기 얼굴에 한숨을 달고 이야기 하신다.

“왜요?”
“맏아들이 딸만 둘 낳니더..” 종손이 끓어 졌다는 말이다.
“저런...왜 며느리 보고 더 낳라카소 왜?”
“요즈음 도시 며느리 시아버지 말 듣닛껴?...가슴 베린다꼬 아 낳아도 젖
도 안주는데.....”
“아이고 우얏꼬...자식 젖도 안주만 안 되지!”
“둘째가 아들이 둘 있는데...양자를 들로라 캐도 며느리들이 각자 반대씨
더”
“.............”
“먼 사돈은 딸이 몇 있닛껴?“
“우린 딸 네 명”
“나도 딸이 네 명 있시더”
“우리 셋째 딸은 미국 가서 살아!”

묻지도 안는데 대뜸 오치 할머니가 미국 가서 사는 딸 자랑을 시작 하신다.
그 참에 버스는 원 뜰 마을 느트나무 아래서 덜덜 떨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세 명이나 더 태웠다.
사람들 얼굴이 찬 겨울바람에 붉게 얼어 있었다.
하나 같이 원 뜰 동네 사람들도 전부 설 떡을 하려는지 쌀 포대를 들고 버
스를 올랐다.
버스는 건너 마을 지나고 주막거리를 지나서 돌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 했
다.
돌 고개 음달 편은 아직 눈이 그대로라서 버스 발통이 헛 바뀌 질을 몇 번
씩 하면서 넘었다.
두 할머니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셋째 딸이 그라만 코쟁이 하고 사닛껴?”

서미 할머니가 오치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이씨더..구담 물건너 마을 정씨 집안인데..사위가 이민 갔니더”
“그만 먼 사돈은 셋째 딸이 평소 기중(제일 많이)보고 접을씨더”
‘보고접지 보고접어...그렇치만 비행기 값이 워낙 비싸다카이 명절이 와
도 못 오니더어“
“미국 비행기 값이 글키 비싸잇껴?”
“한번 오는데 ...뭐라 카드라?... 면서기 한달 봉급 보다 많타 카디더”
“표 값이 글키 비싸잇껴?”

서미 할머니가 저으기 놀란 듯이 말한다.

“비싸다 카디더...먼 남무(타국)나라에가서 우째 사는지 걱정있시더”
“걱정 마이소..미국은 잘사는 나라 아잇껴”
“그 집 딸들은 전부 어디 사닛껴?”

이번에 오치 할머니가 되묻는다.

“맏딸은 구미 살고, 둘째 셋째는 서울 살고 막내는 전라도 광주에 사니
더”
“우에(어째서) 구꾸(그렇게) 멀리 전라도 까지 시집을 갔닛껴?”
\\수원서 테래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눈 맞아갖꼬 전라도로 시집 갔니
더\\"
“마카(전부) 잘 사닛껴?”
“마카 잘 사니더.....” 왠지 서미 할머니는 말끝이 힘이 없으시다.
“우리 둘째 사위는 해마다 설에는 용돈을 이십 만원씩 주니더”
이번에는 오치 할머니가 사위 자랑이시다.
“아이구 이십 만원이나!”
“우리 둘째 사위는 은행에 다니는데, 높니더(직위를 말하는 듯 하다)”
“하이구 딸냄이(딸아이) 시집 잘 갔네”
“아파트도 두채고”
“아파트가 두채잇껴?...저런 부자네 부자”
“야..그래놓이까 돈도 있구 오는 봄에는 손자를 영국인가 뭔가 하는 외국
으로 유학 보낸다 카디더”

외국 유학 보낸다는 말은 버스 안에 사람들이 다 들린 정도로 힘이 오르신
목청이다.

“아이고 먼 사돈 둘째 사위는 부자씨더 ”

갑자기 오치 할머니가 흐뭇해하신다.
그러자 서미 할머니도 뒤 질세라

“우리도 둘째 손자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이번에 서울에서 아주 좋은
대학에 붙었다 카디더...가는 인물도 참 좋니더”
“무슨 대학에”
“몰씨더(잘 모른다는 말) 서울 대학이라카던가...하옇튼 머리가 아주 좋아
야 들어간다 카는 대학에 갔니더”
“손자가 공부를 잘 하는가보네”
“가는(그애는 ) 맨날 천날 방안에 처박히 갖꼬 공부만 그룻꾸 한다카디
어”
“저런.”
“아이고 먼 사돈네는 자식 걱정도 없고 손자 걱정도 없고...잘 됬니
더”
“아이래요 이래도 내 속은 색카맣케(검게) 다 타니더”
“왜요?”
“우리 둘째아들이 벌써 4년 째 직장도 없이 저래 놀고 있니더”
“아니 왜 노니껴?”
“아엠픈가(IMF) 뭔가 할 때 회사에서 떨리 났뿌렛잖니껴!( 명 퇴를 말하
는 것 같다)
“저런! 그라만 우야닛껴?”
“그래서 아들이 저래 놀고 있으니깐 며느리가 대신 식당에 일 다니 니더
어”
“.........”
“한창 아이들 밑에 돈 들어 갈 나이인데...아바이는 저래 직장도 없이 놀
고만 있고..내 속이 다 타고 없니더”
“그 집만 그런게 아니씨더..우리는 맏아들도 직장 잃고 놀고 있니더”

이번엔 오치 할머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맏아들 걱정이시다.

“그 집도 마지(맏아들)가요?”
“예..”

버스가 돌고개 넘어 갈 때 까지 이런저런 자식 자랑으로 웃던 할머니들이
갑자기 직장 잃은 맏아들 이야기들이 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이 긴 한숨을
동시에 내 쉬기 시작 했다.

“어느 집안이고 맏이가 잘되야 되는데...고마 학교를 못 나와 노니 맨날
공장에만 돌아다니면서 고생 고생하다가 벌써 환갑이 다 되가는데...아직
집도 한 채 없니더”
“저런!”
“글타꼬(그렇다고) 부모 땅이 많아서 땅 팔아서 집을 사줄 형편도 안 되
고.......”
“둘째가 쫌 사는데...형제간에 도와주는 것도 성씨 다른 며느리들이 가만
있닛껴..
몇 년 전 하도 맏아들이 곤궁해서 내가 나서서 돈 5백만원 형제간에 빌렸는
데....그걸 못 갚아서 이번 설에 내려올지 모르니더....또 한숨이다.
갑자기 서미 할머니가 오치 할머니 귀에 입을 바짝 되시더니

“아이고 먼 사돈요 자식 생각하마 나도 속이 타 타니더”
“왜요?”
“우리 막내딸이 지난해 초봄에 이혼을 했잖닛껴”
“우야꼬?.”
“사위가 주식인가 뭔가 해 가지고 쫄당 망했잖닛껴”
“저런!”
“딸년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소식 끓어진지 벌써 반년이 넘니더”
“우얏꼬(어쩌지)...”

두 할머니들은 또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행여 옆 사람들이 들을 세
라 가만가만히 귀 속말로 이야기하기 시작 했다.

“ 이런 딸냄이(딸아이) 이혼한 이야기 내사 먼 사돈 한데 하기 부끄러부이
더”
“괜 잖니더..오죽 속이 타면 저보고 칼싯껴?”
“막내딸만 생각하면...요즈음은 잠도 안 오고..이러다가 덜컥 내 죽으면
눈도 못 감니더!”
“그래 못 감지 못 감아..아들보다 딸들이 잘 살아야 어마이가 죽어도 눈
을 감는다카는데....더군더나(더욱이) 막내딸이 그래 되면 먼 사돈 속이 오
죽 탈싯껴”
“맞니더 맞니더....내 먼 사돈이니까 내 속 타는 이야기도 하니더만...우
리 막내딸은 젖배도 많이 골았니더..그래도 곱게 자라서 성격이 워낙 사근
사근하고 살림도 참 알뜰하게 했니더.
내 속으로 낳은 딸이지만 우째 저리도 잘하는가...싶더니만 고마 저리 이혼
을 덜컥하고 어디 가서 사는지 소식도 없니더...그러니 제 속이 색카막케
다 타니더 ”

갑자기 서미 할머니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떨 구신다.

“이혼 한 막내 딸 애들은 마구 몇 명 낳닛껴?”
“손자 하나 낳는데...지금 내가 키우니더”
“하이고..아까 고추 푸대 들고 바깥사돈 어런(어른) 따라 나왔던 꼬맹이
말하닛껴?...하이고 우짤싯껴, 내사 먼 사돈 그런 사정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니더....나무 모타리씨더(안타갑다는 말)손자가 몇 살잇껴?”

오치 할머니가 안타까운 듯 말하셨다.

“외손자가 이제 궁민학교(초등학교) 3학년인데 도시 살던 손자가 저래 기
가 죽
어서 이 산골에 할바이한데 와서 사니 한편으로는 불쌍하고...산골에 동무
가 있닛껴..먹을 것이 제 되로 있닛껴...

“맞니더 맞니더...저런 애가 무슨 죄로.....”
“내일 모레 친 손자들이 들이 닥치면...집에 와 있는 외손자 기가 더 안
죽을싯껴?.맹앵 저 어마이 아바이 생각 날끼고...어마이 아바이 이혼하고
저래 내 한데 와서 사는 외손자 생각하면 내사 올 구정에는 친 손자들이 와
도 걱정! 안와도 걱정있시더!”
“그케 글씨더..안 그러실껴?”
“오늘 아침에 내가 집 나서면서 외손자 보고...하도 불쌍해서
내일 모레가 설인데 할매가 니 운동화 하나 사 줄태니 읍내 같이 가자했더
니 우리 외손자 뭐라 카 는지 아닛껴?”
“뭐라 카딧껴?

고개를 한참 폭 수그리고 있더니....외손자가

“날도 추운데 할매 털신발이나 하나 사세요” 카디더....
“아이구 착해라”
“말도 못하게 착하이더어..지 운동화 안사고 할매 운동화 사라 카디더...
그런 착한 아이인데...어마이 아바이가 이혼해서 구정 다가와도 연락도 없
고....우리 외손자 불쌍해서 죽을씨더!”

“그렇치 그렇치...그래 어마이 아바이는 보고 싶다 안 카닛껴?”
\\"말은 안하지만....늘 기가 죽어서 있는 외손자 될꾸 살다보니 내 속이 다
타니더“
“...........”
“이 추분 겨울에 막내 딸년은 이 에미 속이 색카맣케 다 타는지 모르는지
소식도 없고....
그래도 이번 설에 혹 올라는지 며칠 전에는 딸년이 꿈에도 보이디더
그래서 이번에 오면 까짓거 며느리들이야 내 속으로 낳은 아들 끼고 사니
한 병씩만 논가(나누어) 주고 혹 막내딸이 이번 설에 오마 참지름이라도 서
너 병 정도 넉넉히 줄랏꼬 마음먹고 있니더....
처음 신랑하고 갈라서고 아들 내 한데 맡기로 와서는 어메 돈 있으면 한 2
백 만 원만 해 달라 카는데 산골에 농사짓고 사는 내가 돈이 어디 있닛껴?
지 오래비들 한데 돈 소리 하기는 뭣 한지...그저 찔끔 찔끔 울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 때 그 모습 생각하면 내 속이 다 타니더!“

알뜰살뜰 살던 막내딸이 이혼하고 이 깊은 산골에 외손자 맡긴 후로 소식
일체 없는 딸 이야기로 서미 할머니가 또 눈물을 훔치시자 오치골 할머니
도 덩달아 서미골 할머니 손을 부여잡고는 안절 부절이다.

“먼 사돈요 먼 사돈요 우지 마소 우지 마소...이번 설 때는 막내딸이 꼭
올끼시더!
나도 이번 설에 식당에 일 나가는 며느리는 못 오더라도 아들이라도 내려와
서 한창 크는 우리 손자들 먹을 쌀이라도 쫌 갖고 가기를 바래니더(기다린
다는 뜻)...에구 자식이 뭔지 설만 닥아 오면 속은 니 내 없이 더 타니더!

한 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면서 오치골 할머니도 어느덧 눈시울을 적시고 있
었다.

버스가 드디어 밤실 마을 앞을 지나고 어란을 지나서 읍내로 들어서기 시
작 했다.
저 만치 읍내 떡국 만드는 방앗간에는 이미 여러 시골 아낙들이 와서 떡이
나올때를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떡 방앗간 위로는 떡이 스팀에 익어가면서
토하는 흰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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